국가별 선교사 파송 순위를 보면 미국이 6만여 명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어서 한국이 2만여 명(171개국)으로 2위다. 미국의 인구가 한국의 7배 정도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선교사 수가 매우 많음을 알 수 있다.
한편 2024년 종교인식조사에서 국내 종교 인구는 개신교 20%, 불교 17%, 카톨릭 11%, 무종교 51%로 나타났다. 교회수는 3~5만 곳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한국 개신교 140주년이 되는 해다. 갈수록 교인수가 줄어들어 걱정이지만 그래도 100여 년만에 한국 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믿음의 선조들의 기도와 희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로버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39년 ~1866년) 목사는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자다.
영국 웨일스에서 목사 아들로 태어난 그는 런던대학을 졸업한 후 24세 때인 1863년 부인과 함께 중국 선교사로 파송됐다. 하지만 중국 도착 후 3개월만에 부인이 아기를 유산하고 사망하는 비극을 맞는다.
토마스 목사는 아내와 아기를 잃은 후 런던선교회에 보낸 서신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라고 적었다.
그는 슬픔에 굴하지 않고 1865년 중국 산둥성에서 조선 천주교인 김자평과 최선일을 만나 조선의 천주교 신자가 5만 명에 이른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선 선교의 소망을 품는다.
그해 9월 그는 한문 성경을 잔뜩 싣고 연평도로 가 두달 반 가량 머물면서 복음을 전한다.
중국으로 돌아간 토마스 목사는 1866년 8월 조선으로 향하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에 동승해 대동강변으로 간다. 제너럴셔먼호는 통상을 요구하지만 평양성 관리들은 쇄국정책에 따라 이를 거부한다. 양측은 결국 무력충돌까지 벌이게 되고, 썰물로 좌초된 제너럴셔먼호를 향해 평양성의 군사들이 불화살을 쏘며 총공격을 감행한다.

배가 불타자 토마스 목사와 선원들은 모두 배에서 뛰어내렸고, 조선 군사들에게 잡혀 참수형에 처해진다. 이때 토마스 목사는 자신의 목을 베려는 박춘권 부교에게 성경을 건네고 27살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 박춘권은 훗날 안주교회 장로가 된다.
이 사건을 구경하던 12살 소년 최치량은 토마스 목사가 숨지기 전 대동강변에 뿌린 성경들 중 세 권을 줍는다. 최치량은 성경이 금서임을 알게 돼 영문주사 박영식에게 건넸고, 박영식은 성경을 뜯어 벽지로 사용했다. 그런데 박영식의 집에 들른 이영태(박춘권 부교의 조카)가 '벽지 성경'을 읽고 감동 받아 기독교인이 됐다.
최치량과 박영식은 1901년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는 장대현 교회로 성장하고, 순교자 주기철 목사가 시무하게 된다. 또 토마스 목사가 뿌린 성경을 손에 넣은 홍신길은 서가교회 설립자가 됐다. 평양이 훗날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토마스 목사의 순교가 그 주춧돌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토마스 목사의 순교 소식을 들은 목사의 어머니는 남편이 시무한 웨일스 하노버 교회에서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회에 한국인 유재연 목사가 외국인 중 처음으로 담임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토마스 선교사의 묘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있다.

한편 북한은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제너럴셔먼호 격퇴에 앞장선 것처럼 역사를 조작해 '백두혈통'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김응우가 이 사건과 관련됐다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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