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BN뉴스 27일 보도

순례자들(Pilgrims)은 추수감사절과 동의어처럼 여겨집니다. 용감한 남녀들은 훨씬 더 많은 일들로 기억될 가치가 있습니다. 그들의 언약(covenant)과 자치 정부는 미국 헌법과 정부 시스템을 형성했습니다. Paul Strand의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종교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2020년은 플리머스(Plymouth) 개척 400주년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학자인 제리 뉴컴의 다큐멘터리 <The Pilgrims>는 51명의 순례자들이 어떻게 혹독한 매사추세츠의 첫 겨울을 이겨내고, 미래의 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줍니다.
“작디작은 이 그룹이 굉장히 큰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오늘날 미국 인구의 10%, 즉 3천만 명이 메이플라워(Mayflower) 후손입니다. 51명에서 시작해서요.”
순례자들은 사실상 미국을 세웠습니다. 그 당시 영국은 모든 시민이 영국국교회에 속해 그 신앙 체계에 순종해야 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혹독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시키는 방식대로 예배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포되거나 심지어 처형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온전한 복음으로 예배하고 싶었지만, 왕이 양심을 억압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인권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다스리도록 원하신다”는 급진적 사상을 발견했습니다.
메이플라워호는 화물선이었지만, 대서양을 건넌 가장 귀한 짐은 바로 순례자들의 마음 속에 담긴, 성경에서 나온 ‘사상’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폭풍으로 기존 정부의 통치 영역을 벗어난 곳에 도착한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정부 형태를 위한 언약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입니다. 이는 하나님 아래에서 스스로 통치하는 자치 계약이었고, 이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헌법 탄생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이는 세계사의 극적인 전환이었습니다. 강력한 왕이 위에서 아래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백성 스스로가’ 법을 정하고 스스로 복종하기로 동의하는 구조였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초가 ‘자유’가 되게 했고, 이는 자유의 종(Liberty Bell)의 문구에서도 나타납니다. “그 땅에 자유를 공포하라.”
일부 학생들은 “순례자들이 인디언에게서 훔쳤다”는 잘못된 교육을 받습니다. 기록은 정반대를 보여줍니다.
“순례자들은 인디언들에게 친절했고, 사랑과 연민을 보였으며, 경건한 삶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혹독한 겨울, 굶주림 속에서 묻혀 있던 옥수수를 약간 가져갔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옥수수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어 반드시 갚자.”
그들이 정착한 플리머스는 인디언들이 '전염병으로 인해 떠나버린 땅'이었습니다. 순례자들이 도착하기 3년 전 전염병으로 95%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땅’을 차지한 것이었고, 인디언들에게도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 한 순례자가 인디언을 죽였을 때, 순례자 공동체는 형식적인 재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재판을 했고, 유죄 판결을 내린 뒤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이후 인디언들은 순례자들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순례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을 가치가 있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메이플라워의 존스Jones 선장은 혹독한 첫 겨울이 끝날 무렵 그들에게 영국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순례자들은 성경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따르는 삶을 미국적 습관으로 만들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일반 저자들보다 성경을 4배 더 많이 인용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상위 법(higher law)을 인식했습니다. 불의한 왕의 권력 남용은 거역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폭군을 거부하는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1620년 혹독한 겨울 동안 순례자 절반이 사망했고, 생존자도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을 살린 이는 ‘스콴토(Squanto)’라고 불린 한 원주민이었습니다.

스콴토(Tisquantum)는 1600년대 초 매사추세츠 지역에 거주한 인디언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탐욕스러운 영국 선원 토마스 헌트(Thomas Hunt)에게 납치되어 스페인에서 노예로 팔릴 뻔했습니다. 다행히 스페인 수도사들에 의해 구출돼 스페인에서 기독교인이 되었고,·농경 기술·문화를 배웠습니다.
스콴토는 영국으로 가서 영어를 익히고 통역사로 일했습니다. 1619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전염병으로 부족이 전멸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부족과 고향 잃은 슬픔으로 낙심했지만, 영어를 아는 원주민은 자신이 유일함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스콴토는 순례자들이 자신이 살던 땅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돕고자 결심했습니다.
스콴토는 순례자 마을로 가 완벽한 영어로 말했습니다. “내 이름은 티스콴텀이며, 우리는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순례자들은 놀라움과 감격으로 그를 맞이합니다.
스콴토는 순례자들에게 옥수수 재배, 물고기로 비료 만들기, 현지 부족과 평화 조약, 생존 기술을 모두 가르쳤습니다. 그는 순례자들에게 ‘하나님의 응답’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1621년 가을, 풍성한 수확을 이룬 순례자들은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고, 스콴토가 왐파노아그(Wampanoag) 부족을 초대했습니다. 축제는 3일간 이어졌고, 평화와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순례자 지도자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스콴토에게 감사합니다. 그의 길은 쉽지 않았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셨고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스콴토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고, 생의 마지막까지 순례자들과 살며 그들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 스콴토의 기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순례자들에게 밭이 필요했는데, 스콴토 부족의 밭을 이용하게 됨
- 순례자들은 쟁기가 없었지만, 이미 갈아놓은 밭을 사용할 수 있었음
- 스콴토는 영어를 익혀 통역자가 되어 부족 간 화해를 이끔
- 순례자들이 가져온 외래 작물이 자라지 않자 ‘옥수수+생선 비료’ 기술을 전수
- 극심한 가뭄이 왔을 때 공개 금식·기도 후 기적 같은 비가 내림 → 부족 지도자와 많은 인디언이 예수님을 믿게 됨
오늘날 많은 학생들은 미국의 신앙적 기초를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기도는 공립학교에서 사라졌고, 초기 정착민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사실도 가르쳐지지 않습니다.
플리머스를 방문한 목회자·학생 그룹은 잊힌 신앙적 역사를 직접 되찾고자 합니다. 레오 마틴(순례자 재연자)은 말합니다.
“우리는 기독교 원칙 위에 세워진 기독교 국가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순례자들은 통제적이고 엄격했다기보다, 오히려 기쁨(“주의 기쁨이 우리의 힘”),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 자기 절제와 자치(Self-government)를 믿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절반이 첫 해에 사망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의학 연구에 따르면 감사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고, 건강이 개선되며, 뇌의 신경회로가 바뀌는 ‘신경가소성’ 현상이 발생합니다. 감사 습관을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https://youtu.be/DCW03XVfbw0?si=zSP6RzL3miKFrQ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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