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로,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공산주의는 막을 내린 듯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흘러간 옛 노래가 다시 재생되고 있다.

독일 영화 <청년 마르크스>(2017년)는 공산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를 미화했다. 하지만 그는 하층계급을 무시하고 부르조아적 삶을 즐긴 위선자였으며,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사탄숭배자였다.

1. 마르크스는 말로는 계급혁명을 외쳤지만, 계급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칼 마르크스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중산층 집안의 평범한 소년이었다.
모르데카이(모르드개). 마르크스 집안의 원래 성(姓)이다. 마르크스의 친가와 외가 모두 랍비 집안이다.
변호사인 아버지 헤르셀은 프로이센에서 유대인의 공직 진출이 금지되자 마르크스가 6살 때 루터교로 개종했다. 성도 마르쿠스로 바꿨다가 다시 마르크스로 변경한다.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 프로이센의 라인란트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착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 작성한 종교학 논문의 제목은 '신도들과 그리스도의 연합'이었다.
대학 진학 이후 마르크스는 달라졌다. 그는 아버지처럼 법조인이 되기 위해 베를린 법대에 진학했지만 전공 대신 헤겔의 변증법에 심취했다. 그리고 1841년 예나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반정부 성향의 라인 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한다.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으로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마르크스는 그곳에서 평생 지기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난다. 또 오귀스트 블랑키 등 급진 사회주의자들과 어울리고, 프리메이슨 단체인 '대 동방종단'에 가입한다. 1845년 위험 인물로 찍혀 프랑스에서 추방된 후 벨기에를 거쳐 영국 런던으로 간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1848년 공산당선언을 시작으로 자본론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인 '제1인터내셔널'이 창립되며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혁명의 이론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871년 '파리 코뮌' 혁명 실패 후 1883년 런던에서 기관지염으로 사망했다.
여기까지가 세상에 알려진 마르크스의 일생이다. 하지만 그는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평등사회를 외쳤지만, 낭비벽을 가진 계급주의자였다.
마르크스의 낭비벽은 학생 시절부터 시작된다. <천재와 부자(Genie und Reichtum)>를 쓴 롤프 바우어(Rolf Bauer)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베를린대학생 시절 아버지로부터 연간 700탈러의 돈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독일 상위 5%의 연평균 수입이 300탈러 정도였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낭비벽으로 인해 평생지기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 늘 손을 벌렸다. 부유한 방직공장 집 아들인 엥겔스는 회사 돈을 횡령하면서까지 마르크스를 도왔다. 엥겔스는 아버지가 투자한 합자회사 '엥겔스 & 에르멘' 상회에서 일했는데, 아버지에게 돌아갈 이윤 중 절반을 마르크스에게 갖다줬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끈끈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계가 크게 틀어진 적이 있다. 마르크스가 엥겔스 연인의 죽음에 냉담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귀족 집안 여성과 결혼하고 평생 이를 과시한 마르크스와 달리,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아일랜드 여성 메리 번스와 사실혼 관계였다. 엥겔스는 번스가 급사하자 큰 슬픔에 빠졌다.
하지만 평소 무학의 번스를 무시하던 마르크스는 사이코패스나 나르시시스트로 의심되는 편지를 보낸다.
"메리가 아니라, 병도 들고 또 살 만큼 산 우리 어머니가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환경의 압박에 시달리는 '문명인'의 머릿속에는 별 이상한 생각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안녕."
마르크스는 이 편지에서 딸들의 학비와 집값 독촉 때문에 힘들다는 푸념도 잊지 않았다.
사람 좋은 엥겔스도 이번에는 폭발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이번에는 내가 당한 불행과 자네가 그 일을 바라보는 차가운 태도 때문에 자네한테 더 일찍 답장을 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네. 자네도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걸세. 내 모든 친구들과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인 속물들까지도 이번에 나에게 깊은 충격을 준 이 일을 두고 내가 바랬던 것 이상으로 나에게 동정과 우정을 보여주었네. 하지만 자네는 이것이 자네의 '냉정한 태도'의 우월성을 보여줄 적당한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럼 그렇게 하게나!"
엥겔스로부터 돈이 끊긴 마르크스는 3주 후 엥겔스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다. 마르크스는 편지에서 너무 궁핍한 처지라 첫째, 둘째딸은 남의집 가정교사로 들여보내고, 부부와 막내딸은 구빈원에 들어가 살 예정이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인정 많은 엥겔스는 회사 금고에서 100파운드 수표를 훔쳐 마르크스에게 보냈고, 몇 달 뒤 또다시 200파운드를 보냈다. 당시 중산층의 1년 평균 집세가 65파운드 정도였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늘 빈곤한 처지를 내세우며 지인들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7명의 자녀 중 4명이 어린 시절 숨졌다. 이중 3명은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할 정도로 수입이 없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낭비벽만 없었다면 충분히 먹고 살만한 돈을 벌었다.
그는 당시 세계 최대 부수(20만 부)를 자랑하던 미국 데일리 트리뷴의 유럽 특파원으로 14년간 일했다. 또 <노이에 오더 차이퉁>에 기고해 매년 50파운드를 받았다. 부모와 친적이 사망할 때도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매년 200파운드 이상 번 것으로 보인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철도·철강 주식에 투자해 보름만에 4000파운드라는 거액을 벌어들였다.
마르크스가 겪은 궁핍의 주범은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 생활이었다. 그는 망명지인 런던에서도 늘 가정부를 두고 살았고, 언어학자 비서까지 고용했다. 그래서 그의 팬들도 그의 삶이 귀족적이라고 증언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팬인 하노버의 산부인과 의사 쿠겔만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그때 그 집 손님이 마르크스에게 공산주의에서는 "누가 구두를 닦느냐?"라고 물었다. 누군가는 험한 일을 해야 사회가 굴러갈 텐데 모두 평등하다면 과연 누가 험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마르크스는 "당신이 닦으시오!"라고 쏘아붙였다. 집주인인 쿠겔만 부인은 "마르크스 씨의 취향과 습관은 철저하게 귀족적이기 때문에 그가 평등한 사회에서 사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라며 마르크스를 변호(?)하고 나섰다.
마르크스는 귀족적 삶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귀족 집안 여자와 결혼했다. 그는 부인 예니가 명문 귀족 출신인 것을 몹시 자랑스럽게 여겨, 예니의 명함에는 '예니 마르크스'라는 이름과 함께 결혼 전 이름인 '베스트팔렌 여남작'도 함께 써넣도록 했다.
예니는 가족 여행을 위해 새 옷을 장만했지만 밀린 병원 진료비는 내지 않아 주치의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예니의 삼촌이 유산을 남기고 사망하자 엥겔스에게 "행복한 일이 생겼다"는 편지를 보냈다.
예니는 돈이 궁해지자 네덜란드에 사는 마르크스의 이모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몇 달간 네덜란드에 머문 적이 있다.
마르크스의 이모부는 부유한 유대인 상인 리온 필립스였다. 예니는 남편의 이모부에게 생활이 어려워 미국 이민을 고려할 정도라며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처조카의 공산주의 사상에 불쾌감을 느낀 필립스는 이를 거절했다. 필립스는 세계적 기업 필립스를 세운 안톤, 헤라르트 필립스 형제의 할아버지다.
부인이 돈을 얻으러 네덜란드에 가 있는 동안 마르크스는 가정부 헬레네 데무트와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았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데무트는 아들 헨리 프레드릭 데무트의 출생신고를 할 때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적지 않고 빈칸으로 남겨 놓았다. 아들은 선반공이자 노조원으로 살았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헬레네 데무트는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 집 가정부로 일했으며, 마르크스 원고 정리 작업에도 참여했다.

2. 마르크스는 인종차별주의자

3. 마르크스는 사탄숭배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에 작성한 <공산당선언>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마르크스가 대학 시절 이후 쓴 작품에서 악령은 그의 정신을 지배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 '울라넴'은 '임마누엘'을 거꾸로 쓴 사탄 찬송시다.
마르크스는 아버지의 55세 생일에 '창백한 처녀'라는 시를 썼다.
경솔하게도 나는 하늘을 잃어버렸다.
나는 그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나의 영혼은 한때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이제는 지옥으로 확정되었다.
아들이 걱정된 아버지는 “오직 네 심장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네 심장이 순전한 인간의 심장으로 뛰고, 네가 마귀적인 천재(dämonisches Genie)가 아니라면 나는 행복하겠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마르크스는 '절망한 자의 기도'라는 시도 썼다.
나는 나만의 왕좌를 세우리라
그 꼭대기는 차갑고 장엄하리라
그의 요새는 초인적 두려움이요
그의 사령관은 우울한 고통이 되리라
그 왕좌를 맑은 눈으로 보는 자는
죽은 듯 창백해져 벙어리가 되리라
눈먼, 차디찬 죽음의 손에 붙들려
그의 행복이 곧 무덤을 파리라
Des Verzweifelnden Gebet
Einen Thron will ich mir auferbauen,
kalt und riesig soll sein Gipfel sein,
sein Bollwerk sei ihm übermenschlich Grauen,
und sein Marschall sei die düst’re Pein.
Wer mit gesunden Auge sieht,
soll tödlich blaß und stumm sich wenden,
von blinder, kalter Sterblichkeit ergriffen,
soll das Glück sein Grab bereiten.
'배우 칼 마르크스'(1841)
그 검을 보라
어둠의 군주가 내게 팔았도다
그는 박자를 치고 신호를 준다
나는 점점 대담해져 죽음의 춤을 춘다
마치 사탄이라도 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복수를 선언한 시도 있다.
“나는 저 위에서 통치하고 있는 유일한 그에게 복수할 것이다.”
Ich möchte mich an dem Einen rächen, der dort oben herrschet.
이는 루시퍼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이사야 14:13~14)
제1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와 경쟁 관계였던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은 “사탄은 세상 최초의 자유 사상가이며 세상의 구주”라고 말했다.
미국 그로브시티칼리지 정치학 교수이자 <아메리칸 스펙테이터(American Spectator)> 편집자인 폴 캥고어(Dr. Paul Kengor)는 저서 <악마와 카를 마르크스(The Devil and Karl Marx)>에서 마르크스에 대해 “마르크스는 아주 게을렀고, 일하기를 싫어했으며, 가족은 물론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씻는 것도 싫어해 악취가 났으며, 온몸에 종기와 상처가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프리메이슨 '대 동방종단'에 입회했다. 그런데 초기 공산주의 사상가 중 상당수가 프리메이슨 또는 일루미나티로 알려져 있다. 일루미나티는 독일의 예수회 교회법 교수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1748~1830)가 창시했다.
또 레닌, 트로츠키 등 공산혁명가들이 마르크스처럼 유대인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 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성경에서는 사탄을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히브리서 2:14)라고 부른다. 사탄숭배자가 세운 공산주의 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이 얻은 것은 가난과 죽음이다.
소련 스탈린 치하에 숙청과 기근 등으로 1000만 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는 대기근과 문화혁명 등으로 7000만 명 정도가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된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는 킬링필드로 200만 명을 학살했는데,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25%에 이르는 수치다. 특히 지식인들이 주로 희생돼 이후 캄보디아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 됐다.

https://youtu.be/rP7QJl2n560?si=kGD0N3kGWqyJwCFG
https://m.blog.naver.com/ioyeo/22404966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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